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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의 추억



앰프를 만들다 보면 꼭 집나간 자식처럼 눈에 밟히는 모델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레인보우 인티앰프 입니다.
국산앰프라는 타이틀은 그것의 완성도가 높고 낮건 간에 항상
부담스러운 핸디캡을 갖습니다.
레인보우 역시 그런 혼잡합 속에서 86(SE)호기를 마직막으로 사실상 제작이 중지됩니다.
제작가능한 부품이 모두 있는 상태에서 제작이 중단되는 기이한 일을 겪습니다.
인터넷 오디오 장터에서 160만원 짜리 앰프가 40만원대로 떨어지고 설계시 퀄리티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니 제작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져 한 대 만드는데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단종되어 맘 편하게 말하지만 레인보우 한 대 만드는 일이 지금의 분리형 앰프
한 조를 만드는 일보다 더 힘듭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가슴 한켠이 뿌듯해질 정도로 보람을 느낍니다.
오디오 시장에 많은 인티앰프가 있지만 제작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스며든 앰프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가끔 점검차 찾아오는 레인보우에 스피커를 달아 듣노라면 저 스스로도 "역시"라는 감탄사가
흘러나옵니다.
인적없는 깊은 산골에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같이 도시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순수함은 현대인의 찌들고 닫혀있던 가슴속 깊이 들어가 자신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따뜻한 자아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학교 다닐때 "제도"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각종 설계도면을 그리는 작업인데 이때만 해도 컴퓨터 작업은
꿈에도 생각 못할 정도의 시기였지요.
하지만 선생님은 오차비율을 정확하게 그린 제 도면이나 대충 그린 다른 친구의 도면이나
같은 점수를 주셨습니다.
사실 많은 학생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자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기는 힘드셨겠지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에게 이런 푸념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뒤에서 들으셨나 봅니다.
저도 그 사실을 몰랐는데 그 일이 있은 후 저의 성적은 A에서 A+로 상향되었습니다.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레인보우는 제 도면이고 소비자 분들은 제품을 판단하는
선생님 같다라는 것이 엇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좋은 소리의 제품을 만들었다 해도 그 과정을 옆에서 보지않는 한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 잠깐 못된 생각도 들었습니다.
앞으로 내부는 대충 만들고 케이스만 고급스럽게 해서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먹히겠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설계하고, 튜닝하고 힘들게 만들었는데 중고가 40만원대라니.....
구지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고생해서 좋게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짧은 생각이었고 제 스스로의 고집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오죽 이런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썬글라스 디자인을 따진다......
모르고 먹는 사람들 보다 앞으로는 알고 먹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레인보우가 미인박명의 길로 들어섰지만 레인보우가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밑거름이 없었다면 지금의 M-35나 P-40의 결실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항상 그래왔지만 저의 소신을 믿고 앰프를 만들 생각입니다.
비록 국산이라는 무거운 핸디캡을 갖고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노력의 댓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리라 생각됩니다.
시간이 좀 나면 제가 사용할 레인보우를 한 대 만들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베스트 모델로 선정되었던 레인보우 인티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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